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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칼럼] 머리 맞대면 '의료대란' 치료할 수 있을까

SUNDISK 2024. 9. 17. 01:21

문과·이과 1등들이  지난 10년 머리 맞댄 결과가 '의료대란' ?  잘난 그들의 '충돌'에 피해는 국민만.  일반 국민은 관악산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못알아듣는다.  結者解之. 各自圖生.

관악산 방언(사투리) : 문과·이과 1등들의 언어. 일반인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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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칼럼] 머리 맞대면 '의료대란' 치료할 수 있을까

 

'각자도생' 정신으로 오래 버텨야 할 것 같은 의료대란
'누더기 해법'이라도 만들려면 인정해야 할 세 공리
의사 이기주의 · 의사 증원 필요·'시장 실패' 인정
'사람 잡는 선무당' 윤석열이 의료대란 일으킨 핵심
자기성찰 없는 의사들, 윤석열과 뭐가 다른가
'문과·이과 1등 괴물들의 충돌' 표현 취소 않겠다

 

'의료대란'은 오래갈 듯하다. 상황을 수습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화해야 하는데, 관련 행위 주체들이 한 번도 모이지 않았다. 이른바 '여야의정'(與野醫政) 협의체는 말만 무성하지 성사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도 의사들도 지금 상황을 무한정 끌고 갈 수는 없다. 언젠가는 어떤 형식이든 대화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신속하게 해결책을 마련할 확률은 높지 않다.

'높지 않다'는 건 신중한 표현이다. 터놓고 말하면, 전혀 없다고 하는 게 맞다. '여야의정'이 만장일치로 흔쾌히 합의하는 경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현실에서 가능한 것은 '여야의정'이 각자 저마다의 불만을 품은 채 '누더기 같은 절충안'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경우뿐이다. 그런 수준이라도 합의가 되면 다행이다. 지난 칼럼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앞으로도 한동안은 우리 모두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정신으로 의료대란을 견뎌야 한다. 여당 최고위원을 움직여 응급실과 수술실을 출입할 수 있는 '능력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오는 29일 파업 돌입을 밝힌 가운데 27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의료진이 걸어가고 있다. 2024.8.27. 연합뉴스

 

 

"의사들의 의사 증원 반대는 당연" 인정이 첫 번째 명제

그러나 영원히 이럴 수는 없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려면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 생각이 꼭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일수록 저마다의 생각을 밝히고 토론해야 '누더기 같은 절충안'이라도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야의정' 네 주체가 다음 세 명제를 공리(公理, 자명한 진리) 또는 정리(定理, 진리로 증명된 명제)'로 인정하고, 그것을 전제로 논리의 규칙을 지키면서 대화하면 불완전한 해법이라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명제1: "의사들이 증원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은 이른바 '합리적 개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원리는 자리이타(自利利他) 이타자리(利他自利)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남을 이롭게 한다. '자리' 추구가 '이타' 행위의 목적이고 동기다. 한편 '이타'는 '자리' 추구의 사실상 유일하게 정당한 방법이다. 더 많은 사람을 더 이롭게 하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이익을 탐한다고 누군가를 비난하지는 말자.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세상의 이치에 대한 부정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사람을 우러러본다. '이타'를 '자리'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적으로 삼고 자신이 가진 희소한 자원을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이를 존경한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한다면 왜 우러러보겠는가.

의사는 전문 직업인이다. 예외적 인간이 아니다. 의사도 다른 모든 직업인처럼 더 많은 소득, 높은 명성, 사회적 존경, 안정된 지위를 원한다. 어떤 의사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오로지 타인의 생명과 건강을 돌보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면 훌륭한 일이다. 우러러보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훌륭하지 않다고 해서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다. 그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여야정'은 이것을 공리로 인정해야 한다. 의사들이 의사 증원에 반대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사람한테 중요한 것이 '밥그릇'뿐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밥그릇'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고령자 가구 국제 비교 [출처 : 통계청 '장래 가구 추계']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엔 "의사 더 필요하다"

명제2: "지금은 의사를 증원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늙으면 병든다.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병원에 간다. 더 심각한 병을 앓고 더 비싼 치료를 받는다. 사람은 보통 생애 전체 의료비 대부분을 노년기에 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평균연령이 높을수록 사회의 의료서비스 수요는 늘어나며, 의료비 지출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인구가 증가하지 않아도, 심지어는 인구가 감소하는 때에도 초고령 사회에 대비하려면 의사를 더 많이 양성하고 의료기관을 더 많이 지어야 한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대부분 우리나라보다 소득과 국민 평균연령이 높다. 우리나라의 인구 대비 의사 수는 선진국보다 적고 국민소득에서 의료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금까지의 이야기다.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중이다. 우리나라는 조만간 국민 평균연령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나라가 되어 중국이 추월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백 퍼센트 확실하게 예정되어 있다. 의사를 더 많이 양성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조만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의사 부족 문제를 겪게 된다. '여야정'은 이 명제를 '정리'로 인정하지만 '의'는 거부해 왔다. 개별 의사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의사단체들은 완강하게 부정했다. 다른 이익집단이 다 그러하듯 의사들도 '폐쇄형 군중'이다. 폐쇄형 군중은 그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며 정서적으로 충동적이다. '의'가 이 명제를 어느 정도라도 인정하지 않으면 의료대란을 풀 방법이 없다.

 

의료대란으로 인해 전국 응급실 운영이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12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의료진 인력부족 관련 안내문이 띄워져 있다.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은 이달 9∼10일 협의회에 참여하는 전국 수련병원 중 53곳의 응급실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급실 의사가 42% 급감했으며 이에 따라 병원 7곳은 부분 폐쇄를 고려하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2024. 09.12 연합뉴스

 

정부도 어쩌지 못하는 의료서비스 시장의 ‘시장 실패’ 현상

명제3: "의료서비스는 시장원리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 특수 상품이다." 경제학에서는 의료서비스 시장이 '불완전'하다고 한다. '시장 실패(market failure)'라는 말도 쓴다. 무엇보다 의료서비스 수요자인 환자한테 선택권이 없다. 소비자 주권이 성립하지 않는 시장이다. 환자는 자신에게 어떤 의료서비스(수술, 처치, 투약 등)가 필요한지 모른다. 의사가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적정하게 제공했는지 를 판단하지 못한다. 통증이 극심하거나 의식이 불명료하거나 중대한 급성 질병에 걸렸거나 응급처치가 필요한 외상을 입었을 경우 환자와 가족은 의사를 상대로 가격 흥정을 할 수 없다. 요구하는 대로 다 주거나 치료를 포기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정부가 개입한다. 크고 복잡한 제도를 운영한다. 의사 면허제도, 의료법, 국민건강보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기기와 약품에 대한 인‧허가, 서비스 가격(의료수가) 통제 같은 것이다. 의사들은 이 모든 것에 불만을 느낀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정부의 인‧허가와 가격 통제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시장 실패' 현상이 더 있다. 정부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하지 못한다. 직업 선택의 자유, 영업 장소 선택을 포함한 거주 이전의 자유 같은 것이다. 의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의대 졸업생들은 '가성비 낮은' 전공을 피한다. 위험하고 힘든데 보상이 충분하지 않거나, 근본적으로 돈벌이가 어렵거나, 야간진료나 비상근무를 해야 하는 전공을 기꺼이 선택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여러 요소를 종합해 제일 좋아하고 자신의 성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진료과목을 저마다 전공으로 선택한다. 선호 전공은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데 요즘은 피부과, 안과, 영상의학과 같은 과목이 인기가 높고 응급의학과,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은 기피 대상이라고 한다. 근무할 병원이나 개업할 지역을 선택할 때도 당연히 유‧불리를 따진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조계종 총무원장인 진우스님을 예방해 대화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종교계가 의료문제 중재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2024. 09.15 연합뉴스

 

 

장기 계획 세우고 조심스럽게 접근했어야

그래서 사회에 꼭 필요한 필수 의료 분야에 전문의가 크게 모자라는 상황이 생긴다. 어떤 지역에는 병원과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진다. 의사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비난해 봤자 도움 될 것도 없다. 의대 입학정원을 늘려 의사를 증원해도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그것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국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지만 이러한 '시장 실패'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개입 필요성을 인정하며 더러는 적극적으로 권하기도 한다. '여야의정'은 의료서비스 시장의 특수성과 국가 개입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의'가 이 명제를 '정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요약한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고령화 사회에는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 무작정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해서 만사형통은 아니다. 의사 양성 과정의 특성을 고려해 수립한 장기 계획에 따라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주지 않고 의료서비스 시장을 확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수 의료 분야 전문의를 충분히 양성하고 의료서비스의 지역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미시적 보완책을 겸비할 필요가 있다. '합리적 개인'으로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의사들의 반대를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정책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

의사 증원 정책은 의사들의 반대와 저항을 부른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겪는 수준의 '의료대란'을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의사들은 어떤 경우에도 반대 행동을 하겠지만, 의사 증원을 어떤 방법과 속도로 하느냐에 따라서 저항의 강도는 달라질 수 있다. 의사들의 극단적인 저항이 정책의 합리성과 타당성을 증명하는 지표는 아니다. 어떤 면에서 보든 오늘의 '의료대란'은 윤석열 대통령이 일으켰다.

 

윤석열 대통령이 추석 연휴인 15일 서울 강서소방서를 방문해 근무 중인 소방관들을 격려한 뒤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4.9.15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의사들의 극단적 저항 부른 '사람 잡는 선무당'

윤석열은 '사람 잡는 선무당'이다. 충분한 예고도 의견수렴도 토론도 없이, 국회의원 총선을 코앞에 두고,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증원을 한꺼번에 2000명 늘리겠다고 전격으로 발표했다. 왜 하필 2000명인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알 수가 없다. 윤석열은 이 조처의 장기적 효과에 대한 의심과 단기적 부작용에 대한 비판에 귀를 막았다. 폭력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난폭하게 의대 입학정원 확대 조처를 밀어붙였다. 전공의들이 거의 다 병원을 떠났다. 의대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했다. 많은 의대 교수가 사표를 냈다. 대형병원의 응급실과 수술실 기능이 심각한 장애를 겪고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현실을 외면한다.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바보 시늉으로 책임을 피하고 있다.

의사를 편들 마음은 없다. '의료대란'은 윤석열이 일으켰지만, 의사들이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도 부정할 수는 없다. 의사 각자의 견해는 다양할지 모르지만, 의사단체 대표들은 한결같았다.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의료수가'를 비난하면서 의사 수를 늘이는 정책은 무엇이든 무조건 언제나 반대했다. 정부와 국회와 국민은 명제2와 명제3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다수 국민은 예나 지금이나 의사 증원 그 자체에는 찬성한다. 나쁜 방식으로 일을 추진하는 윤석열을 비판할 뿐, 의사들의 투쟁을 응원하지는 않는다. 사회에 필요하고 국민이 원하기 때문에 과거 정부도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 증원 방안을 강구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도 그랬다. 하지만 의대생, 전공의, 의대 교수, 개원의를 불문하고 모든 의사단체가 결사반대해 무산시켰다. 왜 실패했는가?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의료대란의 위험 때문에 과거 대통령과 정부가 의사들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전국 병원 곳곳이 응급실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 중환자실 앞에서 내원객들이 기다리고 있다. 2024. 09.10 연합뉴스

 

 

윤, 의료시스템 붕괴에도 의사 탓만 하며 분풀이 할 것

국민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은 채 오래 쌓이면 정치적 폭발력이 생긴다. 의사들이 의사 증원 정책을 좌절시킬 때마다 잠재적 폭발력은 커졌다. 윤석열은 그것을 믿고 일을 벌였다. 그는 민주화 이후의 모든 전임 대통령과 다르다. 무엇보다 국민 여론을 철저히 무시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아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해도 개의치 않는다. 대통령의 권력으로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한다. 자신과 아내의 범죄 혐의를 덮으려고 국회의 입법권을 짓밟는 대통령이 의사들한테 굴복할 것 같은가? 응급 환자와 중증 환자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참사가 벌어져도 전공의와 의사들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부인할 것이다.

대형병원의 진료시스템이 흔들려 의약품과 의료기기 임상시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도, 의과대학 교육 현장이 대혼돈에 빠져도, 전공의가 없는 탓에 정상적인 진료와 운영을 하지 못하는 대학병원들이 재정 파탄을 겪어도 윤석열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삼아 이익을 추구하는 부도덕한 집단이라고 의사들을 비난하면서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분풀이를 할 공산이 크다.

윤석열은 틀렸다.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려도 외과를 비롯한 필수진료과목의 전문의 부족, 지방 의사 부족,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자원 감소, 지방 공공병원과 보건소 의사 구인난 등 시장 실패로 생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정책을 고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사들이 옳은 것은 아니다. 오늘의 의료대란을 의사들의 자업자득으로 간주하는 대중의 시선에는 분명한 일리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성북구 영암교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도 예배에서 기도하고 있다. 이날 추도예배에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추경호 부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도 함께 했다. 2023.10.29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자기성찰 없는 의사들, 윤석열과 뭐가 다른가

데이터에 근거를 두고 논리적 규칙을 지키면서 논의하면 어렵지 않게 해법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정책을 논리로만 결정하지는 못한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정책이라도 '여야의정'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죽기살기로 반대하면, 특히 '의'가 거부하면 채택하기 어렵다. 모든 주체가 다른 주체의 요구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국민 여론이 용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 주고받는 방식의 타협을 이루어야만 의료대란을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잘 될 것 같지 않다. 다시 말한다. 의료대란은 오래 갈 것이다. 제일 큰 문제는 '정'이다. 말이 '정'이지 사실은 대통령이다. 윤석열이 대화와 타협을 끝까지 거부하면 해법이 없다. 의료대란 사태로 인해 국민 여론이 너무 나빠진 나머지 결국 탄핵당할 위험이 극도로 높아지지 않는 한, 그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국회가 윤석열을 탄핵해 직무를 정지한 후에야 의료대란 해결을 위한 '여야의정'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도 만만치는 않다. 사표를 낸 전공의들은 '민간병원 알바'로 뛴다. 병원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면 수험생 과외를 비롯한 '병원 밖 알바'를 한다. 전문의가 아닐 뿐, 그들도 어엿한 의사다. 자기 힘으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은 전공의로 몸담았던 병원에 돌아가지 않는다. 전공의가 사라진 병원에서 소임을 다하다가 지칠 대로 지쳐 사표를 낸 전문의와 대학 교수들은 민간병원에서 일하면 된다. 능력이 뛰어나면 대학병원에서 근무할 때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 일반 개원의와 중소 규모의 전문병원들은 전공의 사직 사태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의사협회를 비롯한 단체의 대표들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극단적인 언행을 일삼으면서 오로지 '의사의 이익'만 추구할 것이다. 자기성찰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윤석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가 28일 오후 처남 마약 사건 수사를 무마했다는 의혹 등과 관련한 탄핵 심판 2회 변론기일 출석을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들어가고 있다. 2024.5.28. 연합뉴스

 

 

대란 일으키고도 여전히 극단적인 문·이과 '1등 괴물들'

'야야의정 협의체'에서 '여야'는 핵심이 아니다. '의정'이 어떤 내용이든 합의하면 '여야'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보건의료 정책은 큰 차이가 있다. 민주당은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구한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는 보건의료 분야에서 국가의 역할을 키우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였다.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 그러나 '여야'는 정당이다. 국민의 마음을 살핀다. 의료대란을 수습하기를 원한다. 의사 증원의 규모와 속도를 조정할 필요성을 인정한다. 필수진료과목과 공공의료기관의 의료 인력을 확보하는 방안에도 얼마든지 합의할 의향이 있다. 보건의료 정책 노선은 다르지만 의료대란 수습에는 둘 모두 적극적이다. 문제의 핵심은 '의정'이, 구체적으로는 윤석열과 의사단체 대표들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이라는 점이다.

지난 번 칼럼에서 의료대란을 '문과 1등 괴물'과 '이과 1등 괴물'의 충돌이라고 했다. 지나친 표현이라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었다. 인정한다. 나도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취소하지는 않겠다. 윤석열과 그를 둘러싼 전직·현직 검사들은 전형적인 '폐쇄형 군중'이다. 자기네끼리 공감할 뿐 집단 밖의 사람들과는 아무런 교감도 소통도 하지 못하며 소통하려는 의지 또한 없다. 그래서 '괴물'이라고 했다.

의사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아는 의사가 많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전문가로서 능력이 뛰어나고 사회인으로서 교양이 풍부하며 의사 아닌 사람과도 원활하게 대화한다. 그러나 그런 의사들은 의사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의사협회가 제명한 사례도 있었다. 여러 병원의 전공의 대표부터 대한의사협회 회장까지, 의사단체의 대표들이 미디어에 나와서 하는 말을 들으면 윤석열과 검사들만큼이나 '폐쇄형 군중' 증상이 뚜렷하다. 자신들의 주장이 바깥세상에서 아무런 공감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예 인지하지도 못한다.

 

의대 증원을 놓고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2일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병원에서 의료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4. 09. 02 연합뉴스

 

 

의·정 결자해지 없으면 우리나라 "정말 큰 일"

어느 쪽이 '괴물' 아닌 '인간'이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높을까? 굳이 내기를 한다면 '이과 1등'에 오백 원을 걸겠다. 왜? 의사는 검사와 달리 국가의 합법적 강제력으로 이견 집단을 괴롭히지는 않는다. 의사더러 '이과 1등 괴물'이라고 욕한 나를 병원에서 내쫓지 않는다. 아파서 가면 못마땅해도 티 내지 않고 교과서대로 치료해 준다. 오래전 일이지만, 나는 잠시 정부의 보건행정 책임자로 일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면식이 전혀 없는 의사나 의대 교수가 메일을 보내 최근 의료현장 상황을 설명하고 해법에 대한 조언을 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통령실이든 보건복지부든, 윤석열 정부에서 나랏일 하는 사람이 의료대란 사태와 관련해 내 의견을 물은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옛말은 원칙적으로 옳다. 매듭은 지은 사람이 잘 풀 수 있다. 어떤 문제든 그 문제를 만든 사람이 잘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이치를 적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매듭을 지어놓고서도 자신이 매듭을 지은 줄 모르거나, 알긴 하는데 어떻게 매듭을 지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면 결자해지를 할 수 없다. 윤석열은 의료대란을 의사들이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훌륭한 일을 했다고 믿는다. 참모들한테 국민 지지율이 떨어져도 역사의 평가를 믿고 할 일을 하자고 했단다. 2024년 대한민국의 의료대란은 결자해지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정말 큰 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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