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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썰] 눈 떠보니 후진국: 윤 대통령의 위험한 ‘궤변’

SUNDISK 2023. 1. 27. 23:32

 

[논썰] 눈 떠보니 후진국: 윤 대통령의 위험한 ‘궤변’

 

한겨레  박현 기자   조소영 기자   /  등록 :2023-01-07 08:58수정 :2023-01-08 09:07

 

‘지대추구’‘헌법수호’‘기득권’ 용어 끊임없는 자기식 왜곡
정·재계 기득권 카르텔 내버려둔 채 ‘약자 때리기’ 지속

 

안녕하세요. 논썰의 박현입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불과 1500m 떨어진 이태원에서 벌어진 참사를 계기로 ‘국가의 부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한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 책무인 국민의 안전마저 지키지 못한 데 이어, 노동·언론·경제 등 사회 각 분야에서도 역주행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기득권층은 재벌과 부동산 부자들인데, 이들에게는 각종 특혜를 베풀면서 ‘노조 파괴’에 나선 것이 대표적입니다.우리 사회가 단순히 국내총생산(GDP) 10위라는 숫자로만 선진국이 되는 것을 넘어 사회경제체제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눈 떠보니 후진국’이라는 자조 섞인 말들이 나올 지경입니다. 이런 역주행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왜곡된 현실 인식이 적잖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논썰에선 그 발언과 인식이 왜 위험한지 하나하나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다주택자 중과세 완화가 약자 보호다?“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습니다.”(윤 대통령 신년사)

[논썰] 윤 대통령의 위험한 궤변, 눈 떠보니 어느덧 후진국. 한겨레TV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던진 화두입니다. 윤 대통령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지대 추구’(rent seeking)라는 용어까지 동원해가며 기득권층 개혁에 나설 뜻을 밝혔습니다. 이 말만 들으면 아마 많은 국민들은 편법 상속을 일삼는 재벌 오너가나 재벌·대형 금융회사들과 유착된 관료들, 투기로 떼돈을 번 부동산 부자들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개혁의 첫번째 대상으로 꼽은 대상은 바로 노동조합이었습니다.저는 윤 대통령이 말하는 단어나 용어, 그리고 문장을 들으면서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이유를 묻자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이라거나,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가 거의 고스란히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것이 시장의 법칙”이라는 말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헌법이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하면서 헌법 수호 차원이라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다주택자 임대료 전가 문제도 전·월세금이 급등할 때는 일부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만 지금 같은 하락기에는 발생하기 어렵습니다. 세입자를 구하려면 가격을 더 낮춰야 할 유인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이걸 ‘시장의 법칙’이라고 말한 것도 부적절합니다. 다주택자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말해 이런 행위를 부추길 수 있습니다.

[논썰] 윤 대통령의 위험한 궤변, 눈 떠보니 어느덧 후진국. 한겨레TV
[논썰] 윤 대통령의 위험한 궤변, 눈 떠보니 어느덧 후진국. 한겨레TV

‘지대 추구’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국어사전에선 지대 추구를 ‘별다른 노력 없이 일정한 이득을 얻기 위해 비생산적이고 부당한 활동에 경쟁적으로 자원을 낭비하는 행위’라고 설명합니다. 원래 영어 표현 그대로 ‘토지 임대료’에서 나온 말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자신의 특권과 지위를 이용해 사회적 부에서 터무니없이 많은 몫을 차지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노동자는 노동을 해서 임금을 받고 자본가는 투자를 해서 이익을 가져가는 반면에, 토지 소유자는 단지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대(임대료)를 챙기는 것에서 유래됐습니다. 이런 용어를 생존권과 안전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는 노동조합에 사용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논썰] 윤 대통령의 위험한 궤변, 눈 떠보니 어느덧 후진국. 한겨레TV

“특히나 대한민국 경제를 운영함에 있어서 기득권의 지대추구가 나쁜 불평등을 확산시키는 것 맞습니다. 그런데 대표적인 기득권의 지대추구라 하면 부동산 불로소득 같은 거거든요. 특히 다주택자들이라든지 아니면 토지를 대량으로 보유한 자산가들이 추구하는 불로소득이 대표적인 지대추구인데, 그런 데에 대해서 균형 있는 개혁의 의지나 이런 것들은 밝히지 않고 오히려 그 대상을 노동조합으로 두고, 어떻게 보면 '노동조합 악마화'에 대통령이 앞장서는 것 아닌가. 이런 우려가 한편으로는 있고요.”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 3일 YTN 라디오 ‘이슈앤피플’)

 

대통령의 이런 발언들에서 위험한 징후를 느끼는 게 저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용어를 잘못 사용한다는 건 현실을 잘못 진단하고 있거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일 수 있습니다. 현실 인식이 왜곡돼 있으면 엉뚱한 처방이 나올 개연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 주체가 대통령이라면 파장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수밖에 없습니다.

 

MBC에 대한 탄압은 이미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의 언론 자유를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다주택자 문제는 새해 벽두부터 전방위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로 이어졌습니다.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금리 인상기가 마무리되고 집값이 꿈틀거릴 조짐을 보이면 다주택자들은 다시 투기에 나설 것입니다. 지난 몇년간 우리는 투기 광풍을 겪어봐 그 폐해를 잘 알고 있습니다. 투기 광풍은 반드시 대출 급증을 동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최대 뇌관은 2천조원에 육박해 임계점에 다다른 가계부채 문제인데, 또다시 투기 광풍이 분다면 그 뇌관이 터질 공산이 커집니다. 부동산 버블 붕괴로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하고 있는 일본의 길을 따라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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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주범?

 

윤 대통령이 갖고 있는 노동관에서도 왜곡된 현실 인식을 볼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구조적인 문제인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해 이른바 ‘귀족노조’가 노동 약자를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연말 연초 여러 자리에서 밝힌 윤 대통령의 발언에서 감지할 수 있습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노동 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시장에서의 이중구조 개선이라든가 이런 합리적 보상체계, 노노 간에 있어서의 착취적인 그런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됩니다. 노노 간의 이중구조와 양극화가 심화된다고 하고, 그 사이에서 어떤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많이 논의됐던 것처럼 만약에 그런 착취 구조가 존재한다면 그 자체가 벌써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고”(12월21일 국민경제자문회의)

 

“소수의 귀족노조가 다수의 조합원들과 노동 약자들을 착취하고 약탈하는 구조가 방치된다면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발목 잡을 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이 무엇보다 어렵게 됩니다.”(12월27일 국무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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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기업 규모, 원-하청 관계, 고용형태(정규직-비정규직)에 따라 임금이나 고용 안정성에서 큰 격차가 발생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중구조가 발생한 근본적 원인은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이 극도로 효율을 추구하는 수익 중심 경영을 해온 데 기인합니다. 대기업들은 비용 절감과 이익 극대화를 위해 비정규직과 사내 하청을 양산했습니다. 물론 대규모 사업체의 정규직 노조가 정규직 조합원의 이해를 중심으로 해서 활동한 영향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요인이라고 봅니다. 윤 대통령은 더 근본적 문제에는 눈을 감은 채 대규모 사업체의 정규직 노조를 ‘귀족노조’로 지칭하면서 이들의 세력 약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개혁은 구조를 개혁하겠다는 게 아니라 사람을 잡겠다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일 만만한 노조를 때려잡아서 국정운영의 동력을 삼겠다는 건데요. 저는 심각한 문제가 있고”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윤 대통령이 노동 약자들을 보호할 것처럼 말하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화물연대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바로 노동 약자입니다. 화물노동자들은 대부분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월 300만~400만원 정도 벌고 있습니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과로·과적·과속운행을 해야 하는 이들이 결코 귀족노조일 리 없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말 이들의 생존권 요구를 철저히 짓밟았습니다. 파업을 풀면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을 하겠다는 약속도 헌신짝처럼 내다 버렸습니다.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은 엄동설한에 국회 앞 천막에서 단식농성을 하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고, 부위원장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의 파업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도 모자라 재벌 독과점 규제 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동원했습니다.

[논썰] 윤 대통령의 위험한 궤변, 눈 떠보니 어느덧 후진국. 한겨레TV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를 규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지입제로 일하는 화물기사들은 명의만 사업자이지 실상은 특수고용노동자(특고)입니다. 화주인 기업이 운임을 비롯한 근로조건을 사실상 결정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강제 조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미국에선 1세기 전에 없어진 일이 우리나라에선 21세기에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근대 반독점법의 효시는 1890년 제정된 미국의 셔먼법입니다. 이 법에선 노조 파업도 일종의 담합으로 봤습니다. 그러나 이게 노조 탄압용으로 악용되자 1914년 클레이턴법을 제정해 이를 수정했습니다. 클레이턴법은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나 상업적 거래의 품목이 아니다”(the labor of a human being is not a commodity or article of commerce)라며 노조 활동을 반독점법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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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부패를 막는 확실한 길은 회계 투명성 강화입니다. (…) 노조 회계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법과 제도를 보완해야 하고, 기업공시 제도와 같은 이런 공시 제도가 필요하다고 판단이 됩니다.”(12월27일 국무회의)

 

윤 대통령은 노조 재정을 들여다보고, 상장회사처럼 공시까지 하겠다고 합니다. 노조 회계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결국 노조 비리를 캐겠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검사스러운 발상입니다. 말은 회계 투명성 강화이나 결국은 노조 약화를 초래할 것입니다. 자율적 결사체인 노조의 생명은 ‘자주성’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33조에서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해 노조의 ‘자주성’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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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회사들처럼 노조 회계를 일반에 공시하겠다는 발상도 상식 밖입니다. 불특정 다수를 주주로 삼는 상장회사와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노조는 애초에 같은 반열에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개별 노조가 판단에 따라 일반에 공개할 수는 있을 수 있으나 노조 회계를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DART)처럼 공시한다는 발언은 해외토픽감입니다. 저는 이런 일련의 일들을 보며 윤 대통령이 노조 활동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됩니다. 노조 파괴는 사용자와 노동자 간 힘의 불균형을 키워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토대를 훼손할 것입니다.

 

“개혁이든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거든 안보 위기 극복하는 거든 뭐 하나도 무대뽀식으로 밀어붙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중략) 노동개혁은 진짜 노동계와 긴밀한 깊은 대화 협상 이런 걸 통해서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안을 꺼내놔야 되는데, (중략) 내용과 전략이 지금 과연 적절하냐 굉장히 좀 걱정이 됩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2일 YTN 라디오 ‘뉴스킹’)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결은 대기업들이 더이상 비정규직을 양산하지 말고 이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물론 모든 게 수익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를 자발적으로 실행에 옮길 대기업은 일부에 불과할 것입니다. 결국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대항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가 법·제도적으로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지금도 현행 노동조합법 제약상 하청 노조는 대기업 원청 사용자와 교섭이 어렵고, 비정규직은 언제 잘릴지 몰라 노조 활동을 하기 어렵습니다. 특고는 아예 노조로 인정받는 것에서부터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노동조합법 2·3조 개정, 즉 노란봉투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하는데, 정부·여당의 반대로 처리가 안 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이런 것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또한 정규직 노조들도 비정규직 노조와의 연대의 강도를 높여야 할 것입니다. 요컨대, 정규직 노조를 약화시켜 근로조건을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를 시킬 게 아니라 비정규직 노조를 강화해 상향평준화를 시켜야 합니다.

 

정·재계 기득권 카르텔이야말로 지대추구

 

반면에 윤 대통령은 정작 개혁을 해야 할 재벌, 부동산 부자 등 기득권층에는 혜택을 아낌없이 주고 있습니다. 법인세를 5년간 20조원 깎아줬습니다. 반도체 세제지원은 여야 합의로 연말에 국회를 통과했으나, 윤 대통령의 한마디에 세액공제율을 대폭 올려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조차도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는데 더 올려주겠다고 합니다. 세액공제를 추가로 해주면 이로 인한 세수 감소가 내년에 3조6500억원 예상됩니다.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지금은 재정 여력을 최대한 확보해 서민층 지원을 늘려야 합니다. 감세로 재정이 축나면 서민층 지원 예산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재벌들 사이에서는 친기업을 표방한 현 정부의 재벌규제 완화 기조에 살판났다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공정위는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와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 부당지원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해주고 있습니다. 재벌 오너가들에서는 미뤄뒀던 3·4세 경영권 승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10대 그룹 법무팀의 한 고위 임원은 “‘물들어 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말했습니다.(한겨레 12월14일치 경제면 기사 참고)

 

[논썰] 윤 대통령의 위험한 궤변, 눈 떠보니 어느덧 후진국. 한겨레TV

윤 대통령이 외치는 자유가 우리 사회에서 시대적 의미를 가지려면 ‘재벌-관료 유착’을 구심점으로 하고 보수언론이 이들의 논리를 전파하는 기득권 카르텔 구조를 깨뜨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고위 관료들은 주로 퇴직 이후 수억원대의 고액 연봉이 보장되는 자리로 이동합니다. 로펌, 대기업, 대형 금융회사 등의 고위직으로 이직한 뒤 인맥을 통해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칩니다. 민감한 현안이 발생할 때는 기업의 방패막이 역할도 합니다. 이렇게 꿀이 흐르는 자리는 후배들에게 이어집니다. 거대한 ‘이익공동체’입니다. 이들의 로비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은밀하게 이뤄져 탄로 날 위험성도 거의 없습니다. 대표적인 게 모피아(MOFIA)입니다. 모피아는 재정·금융 관료 출신들을 말합니다. 과거 재무부의 영문(Ministry of Finance) 머리글자와 마피아의 합성어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은 ‘산피아’, 감사원 출신은 ‘감피아’, 공정거래위원회 출신은 ‘공피아’ 등으로 불릴 정도로 관계 전반에 이런 풍조가 만연돼 있습니다.

 

지금 노조 제압에 나서고 있는 공정위 관료들은 퇴직 뒤에 대기업이나 로펌에 재취업해 수억원대의 연봉을 받는 게 관행처럼 돼 있습니다. 이는 공정위가 전속고발권 등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입니다. 공정위는 남소 우려를 제기하며 전속고발권 폐지에 반대하는데 진짜 속내는 자신들의 권한이 약화될 수 있어서입니다. 또한 주요국에서 도입돼 소비자 권익 증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집단소송제의 확대 논의도 대기업 로비와 관료들의 소극적 태도로 10년 넘게 공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 전형적인 ‘지대 추구’ 현상입니다. 합법으로 가장한 이런 부패는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은 물론이고 정직하게 사업하는 기업가들을 좌절하게 만듭니다. 지대 추구 억제가 국민소득을 증진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대기업과 대형 금융회사의 로비와 관료들의 부당한 지대 추구 행위를 없애는 것이야말로 ‘자유’ 시장경제를 꽃피우게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 역사가 긴 주요국들은 19세기 말~20세기 초중반 자유주의 개혁 과정에서 특권층의 지대 추구 행위들이 많이 걸러졌습니다. 반면에 단기간에 압축성장한 우리나라는 그런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재벌의 영향력은 사회 전 분야를 압도할 정도로 막강해졌고, 보수언론은 ‘강성 귀족노조’라는 교묘한 프레임 씌우기로 재벌의 이익에 봉사하며 카르텔의 한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개발연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 정신이 강했던 관료들도 특권계급화하면서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화 성향이 강해졌습니다. 재벌을 중심으로 한 강자가 약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번성하는 ‘약육강식’의 구조가 고착화하고 불평등과 양극화는 심화된 것입니다. 이런 비정상적 구조를 바꾸는 게 윤 대통령이 해야 할 시대적 소명입니다. 지금 진정한 자유가 필요한 이들은 이런 기득권층이 아니라 바로 민초들입니다. 새해에는 윤 대통령이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길 바랍니다.

 

기획·출연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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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후진국’

한겨레 박현 기자   /    등록 :2022-11-10 14:56   수정 :2022-12-06 16:35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요즘 우리나라는 정치·외교·사회·경제 거의 전 분야에서 국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우리나라 국정 운영 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려있음을 방증한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책이 지난해 화제를 모았는데, 이제는 ‘눈 떠보니 후진국’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불과 1.5㎞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참사는 국가의 부재를 참혹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다중인파가 몰리는 행사가 열리면 사전에 안전관리 대비책을 세우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지자체 어떤 조직도 총대를 메고 나서지 않았다.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시민들이 다급하게 위기 신호를 보냈으나, 이에 신속히 반응하는 조직도 없었고 위기관리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지자체 책임자들은 아예 제자리에 있지조차 않았다. 이들을 독려하고 조정해야 할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실 국정상황실과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존재 또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컨트롤타워 책임자들은 내 책임이 아니라거나(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 보고를 못 받았다고(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변명하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국정상황실이 위기관리의 컨트롤타워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는데 이를 책임지는 비서실장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이 장관은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한 장본인이면서도 경찰 지휘·감독 권한이 없다고 뻔뻔하게 발뺌하기까지 했다. 이런 태도를 가진 이들이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니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태원 참사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다. 경제 분야에서도 관료들이 늑장 대처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금융시장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촉발한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경색을 정부는 한달 가까이 방치했다. 금융관료들도 이 사안을 알고 있었으나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자금경색이 확산하고 나서야 허겁지겁 ‘50조+알파’ 유동성 공급대책을 내놨다. 게다가 지난주엔 흥국생명이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콜옵션) 연기를 발표해 채권시장을 다시 불안에 빠뜨렸다. 금융당국은 이 발표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금융시장이 살얼음판을 걸을 때는 작은 위험 요소라도 불씨가 돼 순식간에 위험이 확산할 수 있다는 걸 몰랐다는 것일까.

 

9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해명이 더 가관이다. 그는 “흥국생명이 11월1일 콜옵션 행사 안 하겠다고 발표했고, 문제될 것 같아서 ‘흥국생명 괜찮은 회사다’라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며 “그런데 이게 해명이 안 될 것 같아 미리 조치를 준비한 것으로 대응하자고 했고, 11월9일 콜옵션 이행을 다시 추진해 사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정부의 늑장 대처가 불안을 키웠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그래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몰염치한 태도다.

 

지금 공직사회는 나사가 풀려 있어도 한참 풀려 있다. 나라는 엉망인데 관료들은 태평성대라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중대 사안이 벌어질 위험이 농후한데도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외교 참사에 이어 사회, 경제 분야에서 잇따라 큰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현 집권 세력의 국정 수행능력이 근본적인 한계에 봉착했음을 방증한다. 권부 핵심을 차지한 검찰 엘리트들은 국정 운영 경험조차 없고, 이들이 하위 파트너로 손을 잡은 모피아를 비롯한 행정 관료들은 권력 핵심부 눈치보기에 급급하며 제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어쩌다가 국가 시스템이 갑자기 엉망이 되고 국격 추락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을까. 가장 큰 원인은 리더십에 있다. 어느 조직이나 리더는 우선순위를 선택해 방향을 제시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리더가 만사에 솔선수범하고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자신이 최종 책임을 지겠다고 하며 힘을 실어주고 독려를 해야 조직이 굴러가는 법이다.

 

거대한 관료 조직은 이런 리더십이 더더욱 필요한 곳이다. 윤석열 대통령처럼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이너서클에 있는 이들을 보호하면서 책임을 하부에 떠넘기면 관료들은 충성도 하지 않을 뿐더러 복지부동에 빠진다. 혹시나 불똥이 튀지 않을까 눈치를 보며 자기 보신에만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관련해서도 대통령이 먼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들께 공식 사과를 한 뒤에, 공직자들을 엄중히 꾸짖었어야 했다.

 

두번째는 관료집단의 문제다. 과거 개발연대에는 관료가 유능한 집단으로 인정받았으나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미 지배계급화 되어 있어 서민층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국민과의 공감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한덕수 국무총리, 김대기 비서실장, 이상민 장관 등 엘리트 관료 출신들의 행태에서 잘 드러난다.

 

윤 대통령이 그 동안의 국정운영 방식이 잘못됐음을 깨닫고 환골탈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전면적인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지나치게 검찰과 관료 엘리트들에 의존하면 이런 위기 상황은 반복해서 발생할 것이다. 진보·보수를 떠나 역량있고 경험이 풍부한 인재들을 요직에 등용해 정부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 그래야 관료 조직이 움직이고 국정 안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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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후진국 2…‘총 대신 법’으로 윽박지르는 권력

 

한겨레  박현 기자   /  등록 :2022-12-06 16:11   수정 :2022-12-07 18:09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파르나스에서 열린 제54회 국가 조찬기도회에 참석, 기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현 | 논설위원일요일 저녁 티브이를 틀자 마침 윤석열 대통령이 발언하는 장면이 나왔다.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해 관계 장관 대책회의에서 초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조직적으로 불법과 폭력을 행사하는 세력과는 어떠한 경우에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장관들께서는 이러한 불법 행위에 대해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서 끝까지 추적하고 신속 엄정하게 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만 ‘불법’과 ‘폭력’이란 단어를 각각 일곱차례와 네차례 언급하고, ‘끝까지 추적하겠다’는 발언을 두차례 했다. 마치 1980년대 티브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발언만으로 그때를 떠올린 건 아니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10·29 참사 이튿날 사고 책임을 묻는 질문에 “서울 시내 곳곳에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경비 병력이 분산됐다”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80년대 내무부 장관이나 치안본부장의 말을 연상시키는 발언들이었다.

 

이런 일들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문화방송>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거부, 전 정권과 제1야당 주요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 등등. 이제는 노조의 파업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범죄시하는 발언까지 나왔다.

 

또한 노동자들의 생계·안전 문제가 걸린 파업을, 우리가 결코 용인할 수 없는 국가안보 문제인 ‘북핵 위협’에 빗대 원칙적 대응을 주문한 것도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 정치의 본령인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 노력은 온데간데없고, 처벌을 위협하며 찍어누르려는 모습만 보인다.

 

오죽하면 국제노동기구(ILO)가 정부에 서한까지 보내 ‘결사의 자유’를 제한했다며 형사 제재를 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나섰을까. 한달 전 이태원 참사를 겪으며 ‘눈 떠보니 후진국’이란 칼럼을 썼는데 그사이 ‘노동 후진국’이란 꼬리표까지 달게 됐다.

 

권부 핵심이 지금 치안, 언론, 노동, 정치 등 각 분야에서 벌이는 일들은 우리 사회가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30여년 간 힘겹게 일궈온 노력들을 수포로 되돌릴 수 있는 징후들이다. 사용하는 언어와 법 집행 방식이 조금 세련됐을지 모른다. 그건 먹물을 조금 더 먹고, ‘총’ 대신 ‘법’을 만지는 이들로 권부 핵심이 구성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비슷하다. 적이냐 아니냐를 판단 잣대로 삼는 군인들처럼 검사 출신들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이를 제어해야 할 여당은 한술 더 뜬다. 여당 지도부에선 민주노총을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 “조선노동당 2중대”라고 주장하며 군부독재 정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용공 프레임’까지 덧씌우려 한다.

 

80년대식 국정 운영 방식은 경제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물가를 잡는다며 가격 통제를 하는 게 대표적이다. 올해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는데도 전기요금을 제때 올리지 않아 한전은 무려 30조원이 넘는 적자에 빠질 처지다. 전 정권에서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항변할 수 있으나,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적자 규모(지난해 5조8천억원)가 커졌다. 운영자금이 부족해진 한전이 공사채(한전채)를 발행해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쓸어가자 채권금리가 급등해 금융시장까지 요동을 쳤다.

 

강원도의 레고랜드 회생절차 신청 때처럼 정부는 쉬쉬하며 봉합하는 데 급급하다 문제를 더 키웠다. 이는 가뜩이나 고금리에 허덕이는 가계와 기업들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조밀하게 얽혀 있는 자본주의 경제 생태계에서 정부가 가격 결정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반드시 사달이 나게 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해 관계장관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전두환 정권이 물가를 잡은 것을 치적으로 자랑하곤 했는데, 그건 당시 우리 경제 규모가 작았을 때 얘기다. G-10이 된 지금 정부가 가격 통제 방식으로 물가를 제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오히려 큰 후유증을 남길 공산이 크다. 만약 자금시장 불안이 확산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대거 부실화하면, 그 영향은 제2금융권은 물론 은행에까지 파급될 수 있다.

 

지금 대통령을 둘러싼 모피아(재정·금융관료)들은 이런 사정을 제대로 보고하는지 의구심마저 든다. 생중계된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봤듯이 관료들은 실적 자랑을 하거나 규제완화만 쏟아냈다. 지금의 ‘예스맨’식 관료들로는 엄중한 시기를 헤쳐나가기에 역부족으로 보인다.

 

지난 6개월간 현 정부의 실력은 여실히 드러났다. 이런 국정 난맥상을 방치하기엔 국내외 상황이 너무나 엄혹하다. ‘법대로’를 외치며 윽박지르고 통제하고,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21세기 한국 사회를 이끌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헌법에도 규정돼 있고 스스로도 공약했던 ‘책임총리제’의 이행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여야 모두가 인정할 만한 총리를 새로 선출해 경제·사회 주요 현안들을 실질적으로 풀어나가도록 해야 한다.

 

.hy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