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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8번째 헌재 판단도 ‘합헌’

SUNDISK 2023. 9. 27. 09:21

 

 

 

국가보안법, 8번째 헌재 판단도 ‘합헌’

 

입력 : 2023.09.26 21:27 수정 : 2023.09.26 22:33  /  경향신문   김혜리·김희진 기자

보안법 7조1항 ‘이적단체 찬양·고무’…재판관 6 대 3 ‘합헌’

5항 ‘이적표현물 소지·반포 금지’ 조항은 4 대 5 의견 결정

남북 대치 상황 근거로…‘표현·양심의 자유 위배’ 의견도

 

헌법재판소 앞에서 “보안법 폐지하라”  국가보안법 7조 1·5항 등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 선고를 내린 26일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소속 활동가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날 결정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이적단체를 찬양·고무하거나 이적표현물을 소지·반포하는 것 등을 금지한 국가보안법(보안법) 조항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가 26일 재차 판단했다. 1991년부터 해당 조항에 대해 7차례 합헌 결정한 헌재의 판단은 이번에도 바뀌지 않았다.

 

헌재는 이날 보안법 7조 1·5항에 관한 헌법소원 및 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7조 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반국가단체나 구성원,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5항은 반국가단체 표현물을 제작·소지·반포하는 행위 등을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반국가단체를 규정한 2조와 이적단체 가입 처벌 조항인 7조 3항에 대한 헌법소원은 각하했다.

 

7조 1항에 대해선 재판관 6 대 3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고, 5항에 대해선 구체적 행위별로 판단을 달리했다. 5항 중 ‘제작·운반·반포’ 부분은 재판관 6 대 3 의견으로, ‘소지·취득’ 부분은 4 대 5 의견으로 각각 합헌 결정을 받았다. 위헌 결정 정족수는 재판관 6명이다.

 

이번 헌법소원을 제기한 A씨는 2013년 온라인 사이트에 북한 또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찬양하는 글을 총 26차례 게시하고 김일성 회고록을 자신의 주거지에 보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6년 12월 제주지법의 1심에서 징역 8개월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은 A씨는 항소심에서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했지만 기각되자 이듬해 1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A씨 등 청구인 측은 지난해 9월 열린 공개변론에서 이들 조항이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이적행위나 이적표현물 소지 등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해 국가의 형벌권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해당 조항들이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양심·사상·학문의 자유 등도 침해한다고 했다.

 

반면 법무부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보안법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기본권 침해를 방지하고자 제한 규정을 두고 있어 이전과 같은 오·남용의 소지도 없다고 했다.

 

이날 헌재는 법무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우선 ‘대한민국의 특수한 안보 상황’을 합헌 결정의 근거로 들었다.

헌재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 사이 지정학적 갈등은 계속되고 있고,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 노선의 본질도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이적행위나 이적표현물의 제작·소지·반포 등으로 인한 위험은 언제든지 국가의 안전이나 존립에 위협을 가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헌재는 또 정보기술(IT) 발전으로 이적표현물 소지·취득을 금지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고 했다. 헌재는 “정보통신망을 통한 표현물의 전파는 소지·취득과 전파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거의 없으며, 전파 범위나 대상이 어디까지 이를지도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김기형·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이날 보안법상 이적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 표현·양심·사상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특수한 안보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가장 존엄한 기본권 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김·문·이 재판관은 “이적행위 조항은 대다수 시민의 정당한 의사 표현이나 그 전제가 되는 양심과 사상의 형성을 위축시키고 제한하고 있다”며 “헌법의 근본 이념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들은 보안법 7조 1항이 이적행위로 규정하는 ‘찬양·고무·선전 또는 동조’ 행위를 두고는 국가의 존립과 안전에 대한 구체적 위험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들은 이적행위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는 이상 ‘이적행위 조항의 행위를 할 목적’을 구성요건으로 정하는 이적표현물 조항(7조 5항)도 헌법에 위반된다고 했다. 유남석·정정미 재판관은 7조 5항 중 ‘소지·취득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에 대해서만 위헌 의견을 냈다.

 

시민단체인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은 이날 오후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체제 순응적인 헌재가 극히 보수적인 현실을 옹호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신민정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장은 “국제 인권기준에 맞게 보안법을 근본적으로 개정하거나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며 “헌재의 합헌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